동산 야구사
여름 장맛비는 갑작스럽게 다가와 대회 개최의 앞날을 흐릿하게 만들었지만 부산 복성여관에 자리 잡은 선수들의 마음은 쉬는 것이 아니라 연습을 못하는 걱정이 앞섰다. 2일간 계속되던 지루한 비는 깨끗이 그치고 6월 28일 대회를 개최하는 데 지장이 없는 맑은 날씨가 펼쳐졌다.
28일 5시 7분 동산고의 선공으로 시작된 대전고와의 경기는 일반인의 예상처럼 일방적 시합으로 진행이 되었다. 대전고와 동산고의 실력 차는 너무나 현격했기에 단지 대전고가 신인식의 볼을 어느 정도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 관심사였다. 그리하여 1회 3점, 2회 1점, 9회 3점을 획득하여 7 : 0으로 가볍게 승리를 장식했다. 그러나 광주상고를 20 : 0이라는 엄청난 스코어 차이로 격파하고 올라온 부산고와의 경기는 만만치 않았다. 1회 노아웃 만루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2 : 0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경북을 7 : 1, 경복을 4 : 3으로 제압하고 올라온 인천고와 결승전을 치르게 되었다.
인천고와의 대전은 항상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어서 대전을 기피하는 상태였다. 두 팀은 서로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본교는 예선전에서 3 : 4로 패배한 악몽이 있기에 선수들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1회 무난히 2점을 선취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고 차분하게 게임을 운영해 나갔다. 인천고는 신인식의 역투에 맥을 추지 못하고 범퇴를 당하였고, 본교는 수비에서도 안정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6회 말 안타 1개와 희생타로 1점을 가산하고 6회 이후는 투수전으로 득점 없이 진행하여 3 : 1로 승리를 거두었다. 9회의 마지막 투구가 끝나자 선수 전원은 벤치에 몰려들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로써 기쁨을 나누었다.
이로써 동산은 우리나라 고교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3연패라는 영예로운 월계관을 쓰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청룡기(제자 : 성제 김태석 선생, 도안 : 김기창 화백)를 영구히 간직하게 되었으며 야구 명문 동산의 명예를 안겨준 초석이 되었다. 이러한 전통이 동산 야구부의 저력이 되어 어떠한 난관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고교 야구 3연패는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70년대 경북고에 의하여 또 한번 이루어졌다.
주요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
투 수 신인식 (고7) | 투 수 고순선 (고9) | 포 수 정인성 (고7) | 1 루수 허명호 (고9) | 2 루수 김응회 (고7) |
3루수 염종운 (고7) | 유격수 박하성 (고7) | 좌익수 조한수 (고7) | 중견수 박기련 (고7) | 우익수 김성문 (고8) |
박현덕 선생은 감독상을, 신인식은 우수상을 받았다.
[MHN 스포츠] [고교야구 레전드] 국내 최초 전국대회 3연패, 동산고 신인식 -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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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 국제신문사 주최 제9회 화랑대기 쟁탈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 작년도 8회 우승팀의 자격으로 출전하였으나 뜻밖에도 불행의 아픔을 맛보았다. 그렇게도 패기발랄하고 끈질긴 집념을 지닌 야구부원들이 부산에 도착한 후 유행하던 인플루엔자에 거의 전원이 감염되어 고열과 갈증으로 시달렸다. 도저히 시합에 임할 형편이 아니었다. 청룡기 3연패의 영광을 안은 자부심을 가지고 경기공고와 첫 대전을 가졌으나 0 : 1이라는 점수 차로 패배의 맛을 보아야 했다. 이 일로 선수들은 다시 한 번 건강의 소중함을 재인식했다.
8월 15일 모국을 방문한 재일동포학생야구단과의 친선게임이 서울운동장에서 실시되었다. 재일동포는 모국을 방문하여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전승가도를 달리고 있어서 동산과의 대전은 자못 흥미로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역투에 역투를 거듭하고 혼신의 힘을 기울인 결과 2 : 2 동점으로 무승부를 기록하여 재시합의 기회를 얻었다. 9월 5일 인천 공설운동장에서 거행된 재시합은 동산건아의 기백을 살려 모국방문 후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재일동포팀을 1 : 0으로 제압, 공설운동장에 꽉 들어찬 인천야구인들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주었다.
세광고를 7회 15 : 0으로 물리친 부산상고와의 시합은 부산상고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1회 말 동산은 일거에 5점을 선취하여 일방적인 시합을 이끌어 갔다. 부산상고 남흥우 선수는 제구력이 정돈되지 못하여 김부길과 교대하였다가 2회에 다시 등판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재차 마운드에 올라선 김부길은 혼신을 다하여 투구를 계속하였으나 계속 실점하여 2회 말에 8 : 0이 되었다. 큰 점수를 얻은 동산은 장타를 노리는 등 공격력을 집중하지 못하고 득점 기회를 놓쳐버렸고 오히려 8회에 1점을 실점하기도 했다.
특히 이 시합에서 유일한 흥미는 승부를 떠나서 동산 신인식 투수의 투구에 대한 성적이었다. 즉 6회까지 무안타 무주자 무사사구의 기록을 작성하여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것이 운동장을 가득 메운 관중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7회에 4구, 8회에 4구, 9회에 안타를 1개씩 허락함으로써 위대한 기록은 이루지 못하였다. 박하성은 2회에서 그라운드홈런을 기록하여 관중의 박수를 한 몸에 받았으며 4타수 3안타를 기록하였다.
부산상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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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은 1차전에서 대전사범을 10 : 1로 대파하고 2차전에서 경동을 4 : 3으로 침몰시키고 결승전에서 동산과 패권을 다투게 되었다. 인천 공설운동장을 꽉 메운 인천시민들은 맑은 날씨 속에서 그날의 시합을 주시하였다. 9월 23일 하오 3시 10분 동산의 선공으로 시작된 결승전은 2회 초 경북의 연이은 실책으로 행운의 3점을 선취하였다. 경북은 특유의 끈질긴 집념으로 9회 말에 2점을 만회하였지만, 승리는 우리의 차지였다.
이로써 동산은 창단 이후 처음으로 황금사자기를 가슴에 안는 벅찬 감격을 맛보았으며 그 해 청룡기와 황금사자기를 본교에 안치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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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상에는 박하성이 본루타상과 타격상을, 미기상은 조한수가 받았다.
1957년 10월 11일 그 해 전국대회의 마지막 시합인 4개 도시 대항 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있었다.
첫날 두 번째 시합에서 서울 대표 경동고와의 대전에서 3 : 1로 승리를 거두고 2차전에 진출하였다.
12일 그해 두 번째 맞붙은 경북고와의 시합에서 2 : 0으로 승리하여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었다.
13일 부산상고와의 결승전은 벌써 두 번이나 이긴 상태에서 세 번째 맞이하는 시합이라 서로의 실력을 훤히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세 번째는 이겨야 한다는 부산상고의 패기에 눌려 백중세를 연출하던 끝에 1 : 0으로 승리하여 4개 도시 대항전에서 2연패를 거두는 기쁨을 만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