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응전(1999~08년)

  • 제1장 변혁 - 새 학교문화 창조 1999

    제1절 교육환경의 변화

     

    (1) ‘교육비전 2002’의 개요

      1999년은 세기말(世紀末)인 동시에 새 천년을 준비하는 전환기에 해당된다. <동산 70년사>로 보더라도 ‘최근 10년사’에 해당되는 시기이지만, 사회적인 여건 특히 교육환경의 변화가 크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2002년 이후의 새로운 대학입학전형제도가 예고되었고, 「새 학교문화 창조」를 기치로 21세기에 요구되는 새로운 교육의 기틀을 마련해 가는 시기였다. 여기서 <새 학교문화 창조>란 ‘학교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학교 현장의 문제점을 스스로 고쳐나가고, 학생의 자아실현을 극대화 할 수 있도록 창의성의 신장과 인성교육을 꾸준히 추구해 나가는 교육실천 운동’이라고 정의된다.

     

    ‘교육비전 2002’로 명명되었던 <새 학교문화 창조>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 대대적인 교원 인사

      1999년은 교원인사에서도 많은 변화를 보인 시점이었다. 정년단축(65세에서 62세로)과 맞물려 명예퇴직, 정년퇴임, 신규임용, 교장·교감 이취임 등 아래와 같이 교원인사이동이 두드러진 해였다.

    아래에 보이는 바와 같이 1999년 한 해에만 10명이 퇴임하였는데, 전후로 퇴임하신 차승환 선생(교련, 1996.2), 이재흥 선생(수학, 1997.2), 박정길선생(수학, 1997.2) 민계웅 선생(2000.8)을 감안하면 가히 교육환경에 변화를 줄 정도의 교원인사라 할 수 있다.

     

    (3) ‘7․20 교육여건 개선정책’

      김대중 정부가 2001년 7월 20일 발표한, 교육부의 세칭 ‘7.20 교육여건 개선정책’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2003년까지 학급당 정원을 35.0명 이하로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것인데, 우선 2001년부터 본교의 학급수, 학급당 정원, 학생수, 교사정원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 제2절 교육계획서와 학교 교육목표의 개선 1999.01

    (1) 불후의 명작 <1999학년도 교육계획서>

      제6대 김진원 교장선생님은 1988년 9월에 취임하여 정년단축으로 인하여 1999년 9월 퇴직을 하게 된다. 1985년 3월에 취임한 빈무식 교감선생님과 함께 재임 중 ‘학력향상’과 ‘인성교육’에 혼신의 노력을 하셨는데, 별도로 다루게 되는 ‘사랑의 성금’운영이 독실한 기독교인(창영감리교회 장로)으로서의 면모를 보인 것이라면, 평소 메모를 잘 하시고 기획력과 추진력을 겸비한 분으로서 ‘교육계획’ 수립과 운영에 열정을 지니셨다고 여겨진다.

      마침 1997년에 <교무기획>, 1998년에<연구과 차석>을 거쳐 1999년에 <기획부장>을 맡게 되는 윤병언선생이 당시 교장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획기적인 변화와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전까지는 내용도 조금은 구태의연했고, A4 크기로 편집에는 전혀 멋을 들이지 않고, 각 부서에서 제출한 것들을 단순히 모아서 제본하는 데에 그쳤다. 그러던 중 1997년 ‘교무기획’인 윤병언선생이 46배판의 아담하고 짜임새 있는 <1998교육계획서>를 간행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듬해 ‘연구부 차석’이지만 주도적으로 업무를 맡아 불후의 명작 <1999교육계획서>를 탄생시키게 된다.

     

      여기서 ‘불후의 명작’이라 명명하는 것은

    첫째, ‘전국 교육계획서 경진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고(교육부 포상금 450만원, 교육청 격려금 200만원) 인문계에서는 1위에 당하는 쾌거를 거둔 점을 들 수 있고,

    둘째는 10년이 흐른 지금의 교육계획서에서도 근간을 이루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2) 학교 교육목표의 개선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구호로 내세워지는 것은 정치·사회적 환경 변화와 요구되는 가치의 평가에 따라 그 중요도와 우선순위가 달라지게 된다.

      <1999 교육계획서>를 보면, 첫째로 내세웠던 ‘애국인’이 빠지고 <세계인>을 내세웠으며, ‘도덕인’을 제일 우선시 했다. 변혁의 새 천년이 도래하는 시점에서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세계인>을 교육목표로 추구하게 된 것이다.

     

    삭제한 내용 신설한 내용
    · 민족정신 문화 창달 교육 · 학교 정보화 중점 추진
    · 이념교육 및 국가관 정립 교육 · 정보화기기 활용능력 신장
    · 통일 대비 교육 · 도서관, 멀티미디어실 확충
    · 민속놀이 전승 교육  · 생활외국어교육 및 경시대회운영
    · 인천의 얼 심기 교육 · 범교과 국제 이해 교육 강화

     

  • 제2장 응전(應戰) - 동산의 참 모습 1999.02

    제1절 장학금 지급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는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면학의지를 고취하여 더 높은 학업 성취를 달성하도록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본교 동창회에서는 1981년 3월에 <장학금 지급 규정>을 제정하고 ‘동창회 장학금’ 사업을 전개해 왔는데, 제9대 서한샘 동창회장님의 취임과 함께 그 사업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나타내며 동산의 면모를 빛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동창회 지원의 장학금 사업을 ‘성적우수학생 유치’를 위한 홍보활동과 맥을 같이 했다.

      <장학생 선발 및 추천 규정>이 1998년 9월1일 처음 제정된 점에서 그 수혜 대상자의 폭이 확대되어 간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다만, 1981년 10월 총동창회 정기총회(회장 임배영)에서 ‘장학금 수여규정의 제정과 기금조성안’이 제정되었음을 언급한다.

     

  • 제2절 학교특색사업 - 사랑의 성금 1999.03

      앞서 언급했듯이 김진원 교장선생님(1998.3-1999.9)은 독실한 기독교인(창영감리교회 장로)으로서 평소 학생들로 하여금 ‘더불어 사는 마음’을 지니도록 강조하신 바, 기독교적 색채가 배어 있는 ‘도와줄 방안을 내라’를 캐치플레이로 내세우고 인성교육의 성격을 지닌 학교덕목사업을 전개하기에 이른 것이다. ‘교육계획서’에 명시된 내용과 사업 현황을 소개한다.

     

     

    실천적 인성교육 - “사랑의 성금 모으기”


    1. 사업 배경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에 경제 성장을 이룩하면서 산업 사회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외된 계층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일으키고 적으나마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는 기독교적인 박애 정신에서 사업이 실시되었다. 처음에는 동전모으기 차원에서 학교장의 의지에 따라 기독학생반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학급별로 성금을 거두어 한국 이웃 사랑회나 지역 신문사에 성금을 기탁하였다.

      그 후 1994학년도부터 성금 전달과 함께 봉사 활동으로 연계되어 활성화되면서 사업의 명칭도 ‘사랑의 헌금’에서 ‘사랑의 성금’으로 바뀌어 학교의 덕목사업으로 발전하였다.

     

    2. 목적

    ㅇ본교 학생들의 성금을 모아, 불우한 가정의 학우나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을 준다.

    ㅇ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이 낸 성금이 모여 귀하게 쓰이는 것을 체험하게 하여 청소년기부터 봉사하는 습관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준다.

    ㅇ모든 학생의 참여를 통하여 동산인으로서의 연대감과 협동심을 기르고 모교에 대한 긍지를 갖게 한다.

    ㅇ사업 홍보를 통하여 지역 사회에 대한 애향심을 가지게 한다.

    ㅇ수용 시설 등을 방문하여 후원금을 전달하면서 봉사 활동을 실시하여 본교의 봉사 활동을 활성화한다.

    ㅇ특별활동으로서 모든 학생들에게 봉사 활동의 기회를 부여한다.

    ㅇ지역사회 학교로서 학교와 지역 사회의 유기적인 연대감을 형성한다.

     

    3. 세부 추진 계획

      가. 성금 모금 및 지출

    ㅇ각 반별로 성금함을 설치하여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에 참여하게 한다.

    ㅇ각반의 성금을 학생회에서 취합하고, 지도 교사가 모금액을 확인하여 행정실에 위탁한다.

    ㅇ성금은 불우한 학우를 위한 장학금, 지역 사회 시설(고아원, 지체부자유자 수용소, 양로원 등)에 대한 후원금, 언론 기관을 통한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 필요에 따라 학생회와 교사들이 협의하여 지출한다.

    ㅇ연말 언론 기관 및 자치 단체에 기탁금을 전달하기 위한 특별 모금을 실시한다.

      나. 성금 수혜 대상의 선정

    (1) 장학금

      총사업 금액의 40%한도 내에서, 학업 성적보다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을 학년별로 추천받아 선발하여 골고루 혜택을 받게 한다.

    (2) 일반인 및 사회단체

    ㅇ지역 사회의 수용 시설 중에서 환경이 열악하고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을 우선으로 한다.

    ㅇ교육청 및 언론 기관과 자치 단체의 사업에 협조한다.

     

    4. 연도별 사업 내역

     

     

  • 제3절 환경보전활동 1999.04

      1980년대 중반에도 본교의 쓰레기 처리 방식은 지금 생각하면 말 그대로 전근대적, 비위생적, 환경파괴적이었다. 정문을 들어오면 주차장(현재) 맨 아래 쪽에 지름 4미터 정도의 커다란 웅덩이를 파 놓고 쓰레기를 버린 다음, 가끔 불을 놓아 태우곤 하였다. 바람이라도 불면 교정 곳곳에 쓰레기가 날려 다녔고 빗물이 고이면 물에 둥둥 떠다니다가 하수구로 흘러가기도 했다. 이때는 쓰레기가 바람에 날려 다니지 않도록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다가 미관상 흉물스럽고 비위생적인 웅덩이 쓰레기장을 없애고 소각로를 만들어 사용했다. ‘가연성’ ‘재활용품’ ‘쓰레기’로 단순하게 분리해서 대충 태울 수 있는 것은 소각로에서 처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방식이 학교 환경을 청결하게 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소각하는 데에서 매연은 물론 환경오염물질이 방출되고, 소각 쓰레기 또한 처리가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재활용품은 ‘폐휴지류’와 ‘플라스틱’ ‘고철류’ ‘유리병’ 등으로 분리하고 그 외 쓰레기를 규격봉투에 담아 처리하는 방식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교의 환경보전활동의 효시는 현재 ‘환경반’의 전신으로 1993년 ‘늘푸름반’의 활동에서 비롯된다. 권오석선생(국어, 1992.3-1994.5퇴임)이 창단 후 1년 동안 헌신적인 지도를 하여 토대를 마련하였고, 이후 이철형선생(1994-1999)의 지도로 전성기에 이르게 된다.

      인천에서 최초(1994.10.1)로 그린스카우트에 가입하였고 ‘환경교육 우수학교 표창(1996, 교육부장관)’과 ‘환경보전활동 우수학교표창(1997,인천시교육감)을 수상한 것이 이때이고 ’국가 자원절약 노력상(2000.12.18, 새마을중앙회장)을 수상하게 되는 공적을 쌓은 것도 이 시기다. 이후 염래균선생(2000,01,02,04), 최진용선생(2003), 장덕수선생(2005-현재)의 지도를 받으며 <환경반>학생들이 환경보전활동에 앞장 서게 된다.

     

    다음은 <교육계획>으로 수립되어 운용되는 활동 내용이다.

     

    자활학교 운영 및 자원 절약운동

     

  • 제3장 건물신축과 中·高 교사(校舍) 재배치 1999.05

    1. 1990년대 낙후된 건물 모습

      1998년 MBC 수목드라마로 ‘육남매’가 방영되었다. 재건운동이 한창이던 60년대 초를 배경으로 홀로 된 어머니(장미희 分)와 육남매가 가족애로 똘똘 뭉쳐 가난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가족애와 형제애를 그린 가족 드라마이다. 이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서 40여 년 전 학교건물의 형체를 보존(?)하는 곳을 물색했는데 본교가 선정된 모양이었다. 한동안 ‘육남매’ 촬영하느라 교정이 어수선했고, 왕년의 톱스타 장미희씨가 종종 교정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아마, 당시에 50-60년대식 건물이 부분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곳으로 본교가 유일했던가? ‘오래 된 것’이 찬란한 ‘역사와 전통’으로서 가치가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새 문화 창조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다.

      동산의 건축물이 그랬다. 정문 왼쪽 첫 건물이 1984년 9월, 20실(4실 × 5층, 지하층 포함) 규모로 기공식을 하기까지 소운동장(현재, 공원)에 단층짜리 흙벽돌 건물이 남아 있었고, 현재 고등학교 신관 자리에 바로 <육남매>촬영 건물(2층)이 2001년까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발전을 위한 최우선 과제가 바로 건물 신축과 교실 현대화였다.

     

    2. 학교이전계획의 좌절

      그런데, 학교발전을 위한 건물신축의 커다란 장애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학교발전계획’이었다. 학교가 위치한 동구지역이 ‘구도심’으로 점점 낙후되어 가고 있었으니, 신도시(연수지역)로 이전을 계획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동산의 발전을 위해 1980년대 초부터 학교이전을 계획했으나 여러가지 사정과 IMF사태까지 맞물려 좌절되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재단에서는 ‘건물 조감도’까지 그려서 선보일 정도로 학교이전을 확신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송도의 옛 자동차 운전면허시험장 주변의 땅을 매입하려고 시도했고, 기존의 학교부지를 매입한 후 아파트를 건설하려고 굴지의 건설회사들이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는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아파트값 폭등도 일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송도땅의 매입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IMF로 인하여 경기침체 및 부동산경기하락으로 학교이전은 당분간 보류되었던 것이다.

     

    3. 건물 신축 과정

      비록 학교이전계획의 영향으로 한동안 시설투자에 머뭇거림이 있긴 했으나, IMF사태이후 재단과 관리자들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 현재의 고등학교 신축건물이 태어나게 된 것이었다.

      현재 고등학교 건물(1棟)의 교실 수는 부속실(화장실, 숙직실, 급수실, 문서 창고 등)을 제외하고 총 62실(지하 5실, 1층 13실, 2층∼4층 42실, 5층 2실)로 되어 있다. 이것을 크게 보면 3차로 나눠 건축하였고, 부수적인 공사를 보면 10여 차례의 시설공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1차 공사는 현재 구관 25실(지하1층, 지상4층)을 1992년 10월 기공하여 1993년 4월에 준공한 것인데, 1958년 AFAK(대한 군사원조)협조에 의해 건축되었던 13실(2층)을 허물고 신축한 것이다.

     

      두 번째는 현재 본관 19실(지상 4층)을 2000년 10월 기공하여 2001년 9월 준공한 것으로 戰後(1955)AFAK협조로 야심차게 건축된 역사적인 붉은 벽돌의 본관(지하1층, 지상2층)을 헐어내고 지은 것이다. 이렇게 근 10년에 걸쳐 현재 건물의 2/3정도가 완성된 것인데, 이 공사는 지역교육청 예산 지원에 의한 당시 중학교의 환경개선사업(대수선공사)이었는데, 이를 위해 애쓰셨던 당시 최창수 이사장님과 이 기간 동안 중학교 교장으로 재임하셨던 오창옥 교장선생님, 남선우 교장선생님, 진수일 교장선생님의 공적이 크다고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완성되기에는 7차 교육과정운영을 위한 교육여건개선사업의 덕분이었다. 2002년 7차 교육과정 운영을 대비하여 교육과정 운영에 필요한 시설확충에 교육청 지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육청 지원은 자(自)부담 원칙이 있어, 100% 지원이 아니라 85%를 지원해주고 15%는 재단에서 부담하라는 것이었고, 화장실은 계획에 넣지 않은 채 교실만 지어 주는 상황이었다.

      학교발전을 위하여 어떻게든 건물은 지어야겠기에 기공을 우선 하는데, 어렵사리 짓고 나면 부대시설을 다시 하느라 불편을 겪게 되었고 그마저 외상 공사를 해야 했던 서글픔이 있었다. 학생 화장실공사도 힘들게 했지만 교직원 화장실 공사는 교장선생님의 지급보증으로 외상공사를 한 것이었다. 당시 주영환사무국장님, 박인수 교장선생님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동산중고등학교 교사개축 기공식

     

      10월 28일 오후 2시, 지난 봄 해체되어 잡초가 무성하던 구교사 부지에서 중․고 교장선생님과 재단이사진, 동창회장단, 운영위원장, 학부모대표 등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시공은 평창종합건설이 맡아 하며, 내년 4월까지  교실 20개를 갖춘 현대식 교사가 들어서면 동산의 새로운 면모를 보이게 될 것이다.

    (동산문화 제5호 - 2001년 2월 1일 발행)

     

  • 제4장 불로동산(不老東山) 1999.06

    제1절 70년 전통의 계승과 미래 지향적인 동산

      

      ‘창업(創業)보다 수성(守成)이 어렵다’는 말이 있다. 학생과 학교를 위해, 나아가 민족과 국가를 위해 ‘나의 이익’과 안일함을 버리고 많은 재물을 희사하셨거나, 헌신적으로 봉사하신 분들이 ‘大東山’을 창업(創業)해 놓으셨다면, 수성(守成)하는 길은 빛나는 과거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데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 동산은 끊임없이 자기비판과 반성을 하고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추구한다. 남들이 한 것을 뒤 따라 하면 절대로 남을 앞 설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이다. 구태를 벗고 항상 참신하고 창조적인 자세를 추구한다. 역사가 오래될수록 시설과 교육방법은 더욱 첨단을 지향할 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동산은 늙지 않는다. 늙음은 사멸(死滅)에 가깝다.

     

      영원히 젊음을 간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산의 모습을 2006년 10월 09일자 <인천신문>의 기사 내용을 통해 알아본다.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명문 사학

     

      동산고등학교(교장․김건수)는 일제의 탄압과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한 1938년 7월 14일에 일제의 탄압에 맞서 인천유일의 민족 사학으로 개교하여 인천교육을 선도하는 전통의 명문 고등학교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올해 개교 68주년을 맞아 곧 사람의 인생으로 따지면 고희를 바라보는 전통 명문사학이다.

     

  • 제2절 학력 신장(伸張)과 진학지도 1999.07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학생교육에 있다’고 하는 말이 부정되지 않는다면, 나아가 ‘학생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학교는 존재 이유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학생교육을 제대로 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량화 하여 나타내느냐, 즉 학교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학교교육이 지·덕·체(智德體)를 연마하는데 그 본질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덕(德)과 체(體)는 대체로 평가되지 않는다. 항상 평가대상은 ‘지(智)’에 있다. 그래서 학교의 가치평가를 높게 받으려면 학생들의 ‘지(智)’를 발달시켜야만 한다.

     

      ‘불로동산(不老東山)’이 되기 위해 가장 선행되는 것이 학교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다. 낙제점이면 늙음 정도를 넘어 사멸(死滅)이다. 학교평가는 교육청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학부형이 하고 학생들이 한다. 대학 진학 현황, 곧 명문대 진학현황이 평가 척도이다.

      여기에 본교가 학생들의 학력신장과 진학지도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그 성과를 위해 매진하는 이유가 있다.

     

    (1) 학년별 학력 우수학생 면학실(영재실) 운영

      학력신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면학분위기 조성이다. 수업시간뿐 아니라 자기주도적학습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쾌적하면서도 정숙한 분위기를 유지시켜 주어야 한다.

      특히,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나머지 학생들에게 소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배려하는 것은 더욱 열심히 하도록 격려하는 면도 있고, 선의의 경쟁심을 유발하도록 하여 전체 학생들의 면학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이유도 있다.

      1986년도부터 1990년대 초까지 상위권 학생들을 선정하여 <합숙소>를 운영한 것도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2004년까지는 안정되지 않은 시설 배치로 여유 교실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2003년 2월 신축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채로 중·고 교사 재배치가 되어 2년 동안 완전한 설비를 미루다가, 2005년 신학년도를 준비하면서 비로소 우수 학생을 위한 학년별 영재실을 설비하였다.

     

      2005년 초, 학년별 교실 1실당 20개의 개인 학습용 책상을 설비하였고, 2008년 초에는 바닥을 전기판넬을 시공하였다. 지도교사는 자율학습시간동안 영재실안에서 임장지도를 하도록 한다. 일과 중 휴식시간이나 공휴일 언제라도 개방한다.

     

      비록, 입학 초에는 영재가 아니었지만 <영재실>에서 공부하여 ‘영재’가 되어 명문대학에 진학하고, 나아가 세계의 리더가 될 것임을 믿는다.

     

    (2) 교육활동 실적

    □ 수상 실적(1999년 이후 대외상, 체육부문 제외)

     

  • 제3절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 1999.07.

    (1) 교단 선진화

     

      오늘날 현대인들은 사무실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컴퓨터가 없으면 세상 살아가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특히, 학교교육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컴퓨터가 필수품이 되었고, 점점 그 기능이 발전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본교에 1990년대 초반에만 해도 고작 286컴퓨터 몇 대 정도 설치되어 성적처리 등 업무용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296컴퓨터가 25대 배치되었으나 교육용으로 적당한 소프트웨어가 없었고, 운영체제도 DOS라서 잘 사용되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1998년 초반 교단선진화 정책의 일환으로 1학년 교실 10곳에 프로젝션TV와 컴퓨터 1대씩이 배치되었다. 1999년에는 멀티미디어실에 50대의 컴퓨터와 빔 프로젝터 및 각종 멀티미디어 장비가 들어와서 학생들은 컴퓨터 관련 수업을 칠판 위주가 아닌 실습 위주의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2000년도에는 컴퓨터와 프로젝션TV가 전 학년으로 확장 배치되어 학생들은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1999년 멀티미디어실에 1대 밖에 없던 빔프로젝터도 해를 거듭할수록 한 대, 두 대 추가되어 도서실, 열람실, 물리실, 화학실 등에 배치되어 현대화된 교실 및 특별실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형태의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수업형태도 과거의 칠판 위주, 암기식 위주의 수업에서 벗어나 사진이나 동영상 등이 수업 중간에 교과와 연결하여 보여 줄 수 있어서 학생들은 현장감 넘치는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들도 2000년을 전후로 교사 1인당 컴퓨터 1대씩 배치되어 수업 준비를 위해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고,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정보의 바다에 접근이 가능해졌다. 또한, 초창기 글 위주의 텍스트형 수업 자료가 대부분이었으나 여러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파워포인트나 멀티미디어 저작도구로 다양한 수업자료들이 만들어 지고 사용되고 있다.

      2000년 이후 컴퓨터의 빠른 발전 속도에 맞춰 멀티미디어실에는 2003년에는 30대의 펜티엄IV 컴퓨터로 교체되었고, 2004년에는 각 교무실 별로 30대의 펜티엄IV 컴퓨터가 배치되었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나서 2008년 현재 학교의 컴퓨터가 펜티엄IV 이상의 사양으로 150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앞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어떤 양상으로 발전해 나갈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다만, 학교에서는 그 발달과 변모에 부응하여 계속 개선해 나갈 것이다.

     

    (2) 과학 실험실 현대화

     

      1967년 건평 430평의 <과학관>이 준공되고 그 건물에 <실험실>을 갖추었을 때에는 인천에서 가장 현대화된 과학실의 면모를 자랑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시설과 장비가 노후되고, 잦은 교사(校舍)의 재배치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였다. 그 후 2003년 2월 전면적인 중·고 교사(校舍) 재배치가 완료된 후 교실 5실을 과학실로 확보했고, ‘2004 과학 교육 5개년계획’ 곧 <과학실 현대화 사업>에 힘입어 1차적인 설비를 완성하였다.

     

     

    (3) 학교도서관 전산화 및 활성화 사업

     

      내실 있는 학교교육을 위해서 가장 강조되는 것 중의 하나가 ‘독서교육’일 것이며, 이의 실현을 위하여 학교도서관의 첨단 설비와 적절한 도서 구비는 끊임없이 개선되고 보충되어야 하는 과제일 것이다. 즉,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고 첨단 시설과 각 장르를 망라하는 관련 신간도서의 적절한 구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또한 전문사서교사가 배치되어 효율적 운용을 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러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 배경이 매우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교 동산고등학교 도서관은 우리나라에서 학교도서관 전산화의 선각적 위치에 있다. 전산화를 매우 일찍 실현시켰으며, 효율적인 독서교육을 위하여 다각적인 선진적 모색을 끊임없이 시도한 학교로 꼽히고 있다.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시작했던 1997년과 그 이듬해에는, 인천지역 각급 학교들이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위하여 앞 다투어 본교 도서관을 견학하고 본교 운용시스템을 채용하였다. 인천광역시 중앙도서관은 인천지역 학교도서관 지원책의 일환으로 본교 도서관 운영 모델을 모범사례로 소개하고 학교도서관 담당교사 연수를 본교에 맡기기도 하였다.

     

      본교 도서관의 출발에 관한 자세하고 정확한 기록을 지금에서 찾기는 어렵다. 다만 1958년 <학교요람> ‘교실배치도’에 당시 본관 반지하층에 교실 2실 규모의 도서관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본관이 준공된 것이 1955년 12월 15일이므로 본교에서 도서관이 모습을 보이는 시기는 1956년부터라고 추정된다. 당시의 도서관 운용은 당시 서적에 남겨진 도서관리 실태와 대출 흔적으로 보아 전문사서가 운용하는 정도의 상당한 수준으로 짐작된다.

      이후 크게는 두 차례의 중·고 교사 재배치와 내부적으로는 학급수 증가에 따른 잦은 교실 재배치로 인하여 도서관이 여러 차례 이동하거나 어떤 때는 아예 서적 창고쯤으로 전락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입시중심교육 때문에 도서관은 책만 쌓아두고 학생 자율학습의 열람실 공간으로 전락하기 일쑤였을 것이다.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1989년까지 이규환氏(1972-1989)가 행정실 상근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도서대출과 장서정리까지 맡아 부정기적으로 도서관을 운영하였다.

      그러다 그간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도서관(과학관 1층, 교실 1/3칸 규모)이 다시 정기적인 대출 업무를 시작한 것은 박찬희선생(1994-5년 담당)과 구군회(1996년 담당)선생의 열악한 여건에서의 희생적 봉사에 힘입은 바 켰다. 이때부터 특활반으로서의 도서반 활동이 시작되었으며, 이들 학생들의 희생적 봉사는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전기는 그 다음해에 마련되었다. 아직 “학교도서관 전산화”라는 단어가 생소하던 1997년, 김진원 교장선생의 선각적 의지와 당시 연구부장이시던 민계웅선생의 적극적 지원으로 도서담당 교사였던 조남진선생의 “학교도서관 활성화 5개년 계획”이 추진되었다. 열성적이고 치밀한 기획으로, 그동안 침체되었던 도서관 시설을 일제 정비하고 본격적으로 학교도서관 활성화 작업에 들어간다. 이제 본교 학교도서관은 인천지역 학교도서관 담당자들의 필수 모범사례 견학처가 된 것이다.

     

      1999년에는 과학관에 있던 도서관을 본관(오동나무 앞 건물) 옆의 90평(2층) 신축건물 2층에 교실 반칸 규모로 이전하게 되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도서관 이용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이전의 과학관에 있던 도서관의 위치와 규모가 학생이 이용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2003년 2월 최종적인 중·고 교사 재배치를 했고, 2004년 3월 초 교실 한칸의 서고와 교실 한칸의 다목적 학습실, 교실 3칸의 열람실(120석)을 마련하였다. 더욱이 첨단도서관 설비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2004년 12월 4일 교실 2칸으로 <전자도서관>을 개관하기에 이른다. 이는 당시의 박인수 교장선생의 적극적 의지와 도서관 담당교사였던 조남진선생의 열성의 결실이었다. 더욱이 미술교사로 재직(1980-2004)하시다 중앙대 회화과교수로 전직하신 이종구선생(중22회)이 희사한 발전기금 500만원(책상구입)과 이덕인동문(고23회)이 희사한 1,000만원(바닥공사) 등이 총 공사비 1억여 원(교육청 지원 5천만원 외 학교 자체조달)에 보태어져 큰 힘이 되었다.

     

      첨단설비를 하고 연차적인 신간도서 구입 및 바코드 정리 작업으로 이제는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되어 갔는데, 사서교사 없이 도서반원들이 업무를 하다 보니 학생들의 도서관 이용 시간에 많은 제약이 생기게 되었고, 이용률은 점점 저조해졌다. 그러던 중, 2005년부터 학부모님들로 명예사서교사제를 실시하게 되었다. 1일 2명씩 도서관에서 명예사서교사로 근무하였는데, 가장 활동이 활발하였던 해가 2006년이었다. 당시의 학부모 명예사서교사 현황을 살펴보면, 1대회장에는 박영숙님(당시 3학년 이0재 어머니; 이하 학생사항만 기재), 2대회장 김정환님(2학년 서0호), 3대회장 문승자님(1학년 송0열), 그리고 김미경님(1학년 조0진), 정보윤님(1학년 안0수), 김금옥님(1학년 배0규), 최순규님(2학년 전0찬), 이은자님(2학년 정0우), 이영자님(2학년 이0진), 이혜원님(3학년 변0문) 등이 활동하셨다.

      그분들의 헌신적인 노고로 본교의 학교 도서관은 활기를 되찾기 시작하였다.

      이후 편안하고 친근한 도서관 분위기를 만들려는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노력이 도서관 활성화에 또 다른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 제4절 즐거운 학교 만들기 1999.08

      불로동산(不老東山)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바로 수요자 중심의 교육, 고객 만족 구현, 교사와 학생·학부모가 함께 하는 교육의 실현이다. 궁극적으로 ‘즐거운 학교 만들기’인 것이다.

     

      2000년대 우리시 교육청의 교육시책으로 머리에 각인된 것이 바로 ‘학생에게는 꿈을, 교직원에게는 보람을, 학부모에게는 만족을’이다. 나아가 ‘즐거운 마음·웃음진 얼굴·보람찬 하루’로 <즐거운 학교>를 만들어 <새 학교문화>를 창조하자는 것이다. 참 좋은 구호다. 그야말로 학교의 유토피아가 아닌가? 이상과 현실이 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이상을 저버릴 수는 없다. 아무리 입시교육이 중요하고 생활지도가 발목을 잡아도 <즐거운 학교 만들기>에 소홀히 할 수는 없다.

     

    (1) 열린 학교 - 「새동산」「동산문화」제작

     

      ‘즐거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역점을 두는 것 중의 하나는 학교교육, 학교행정이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고 또 그 결과를 홍보해서 구성원(학생·학부모·교사·지역사회)들이 알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론을 표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의도로 1999년 4월 1일부터 학교홍보소식지 월간「새동산」이 첫 선을 보였고, 곧이어 학기별 종합 소식지「동산문화」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새동산」은 부득이하게 휴면상태를 겪기도 했지만, 2008년 5월 현재 통권 67호가 나오면서 동산인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언로(言路)를 열어주고 있다.

      1면에는 <학교·교육 소식>란으로 지난 달의 교육활동 내용과 학교소식을 요약해서 알려준다. 2면은 ‘월중 행사표’를 통해서 그 달에 예정된 교육활동(행사)의 개요를 알 수 있도록 하고, ‘교육 게시판’을 통해 상세한 행사내용이나 공지사항을 보여준다. 3면은 중요한 교육활동 내용이나 문예작품이 소개된다. 마지막으로 4면은 시의적(時宜的)인 시리즈물을 싣는다. 요즘은 ‘논술’지상강좌 및 첨삭지도 안내를 한다.

     

      탄생에서 성장까지 윤병언선생(국어)의 정성어린 손길과 고군분투의 노력이 있었고, ‘신문편집반’학생들의 참여도 있었는데, 현재는 장익섭선생(국어)으로 실무담당자가 바뀌어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동산문화」는 1998년 7월 14일 개교60주년을 맞아 첫 선(A4, 16면)을 보인 후, 1999년 7월 14일 2호(A3, 8면)로 이어지면서 계간지로 의욕적인 출발을 했으나, 이후 학기제로 바뀌어 2008년 3월 3일에 통권18호가 간행되었다. 현재는 B4크기로 총 8면으로 제작한다. 학기별로 교육활동을 집약적으로 홍보하고, ‘화보’를 통해 보는 재미를 더 하게 해주며, 지면 관계상「새동산」에서는 다루지 못했던 문예물이나 사진도 싣는다. 특히 학년말에는 연간 교육활동, 수상실적, 입시 결과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동문회 및 지역사회 소식도 싣는다.

      컴퓨터를 통해 모든 정보를 시시각각 눈에 넣는 시대에 활자 매체가 천대 받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순간적으로 사멸하지 않고 영원히 생명력을 간직하는 것으로 존재 의의가 있다. 앞으로 그 맥이 계속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2) 토론 문화의 정착

     

      ‘교육비전 2002’에서 새 학교문화를 창조하는 중요한 시책 중의 하나가 ‘토론문화의 정착’이다. 이를 위하여 한 때는 시의적(時宜的)인 주제를 선정하여 정기적인 ‘토론회’를 시행하기도 하였고, 매년 학생간부수련회에서 교사·학생 토론회가 정례화 되어 있다.

      토론문화가 정착되고 학교교육에 순기능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학급 자치활동과 학생회대의원회가 활발히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시대에 따라 다소 부침(浮沈)은 있지만, 자율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동산의 전통이 그 맥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학생 토론문화의 단면이다.

     

     

    (3) 수업 만족도 조사 및 피드백으로 수요자 중심교육

     

      2000년대 교육계의 화두(話頭) 중 하나는 ‘교원평가’였다. 2001년도부터 성과급 제도를 운영하면서 병행하여 교원평가를 시행하려다가 교직사회의 거센 반발로 현재까지는 잠정적 보류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국가경쟁력 제고와 수요자 중심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개혁’과 ‘혁신’의 시대조류에서 교직사회가 언제까지 무풍지대로 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원평가’가 교사들에게는 불만스러운 요소가 많지만, 학생·학부모 입장에서는 어쩌면 환영할 일인지도 모른다.

     

      본교는 교원평가에 대한 완충작용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먼저, 교사들 스스로 학생들로부터 ‘수업만족도’조사를 받아서 그 피드백을 통해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는 계기를 삼자는 취지다. 설문 내용과 형식은 과목의 특성에 따라 변용할 수 있도록 한다.  

     

     

    (4) ‘학교헌장’ 준수로 고객만족도 제고 및 민원처리 시스템 구축

     

      고객 만족을 위한, 수요자 중심 교육을 위해 학교에서는 2007년에 ‘학교헌장’을 제정한다.

     

    학교헌장 - 동산 신의헌장

     

     

     

    (5) 학부모 교육활동 참여

     

    □ 아버지 학교방문의 날 행사 - 평소 학교방문이 쉽지 않은 아버지들을 위해 ‘아버지 학교방문의 날’을 운영했다. 해마다 교육계획으로 행사를 계획하면서도 실제로 운영하기가 어려운 일 중의 하나지만, 뜻 깊은 교육활동 중의 하나다. 다음은 그 행사의 단면을 <새동산>기사로 소개한다.

     

     

     

    □ 학부모 단체 활동

     

      학부모는 교사, 학생과 함께 학교 구성원으로서 학교교육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과거에는 주로 교육활동 후원자 역할에 치중했다. ‘육성회(育成會)’라는 명칭으로 교육시설이나 학습기자재 확충은 물론 교직원과 학생들의 복지에도 일정 부분 기여를 했다. 물론 현재에도 ‘학교발전기금’으로 후원할 수는 있다. 문제는 회원(학부모)들이 회비를 모아 후원하는 것이 과거에는 합법적이었는데, 요즘은 불법이라는 데 있다.

     

      ‘육성회’가 명칭을 ‘학부모회’로 바뀌고 ‘어머니회’는 ‘새마을 어머니’에서 ‘새마을’이란 접두어가 사라지면서 오랜 세월 <교육활동 후원회>역할을 해 왔다. 물론 학부모님들은 학교교육활동의 개선을 위한 조언자로서 역할도 하고 학교는 평생학습의 장으로서 기능도 해 왔다.

     

      본교는 2007학년도부터는 ‘학부모회’와 ‘어머니회’를 통합하여 학부모 자생단체는 ‘학부모회’ 하나가 있다. 학교에 따라서는 2∼3개 단체가 있는 곳도 있고 아예 학부모단체가 없는 학교도 있다. 학부모들을 후원자보다는 고객 또는 민원인으로서 인식해야 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금까지 학교발전을 이루는데 학부모단체가 많은 도움을 준 데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하는 바이며, 앞으로도 어떤 형태이든 학부모님들이 교육활동에 함께 참여하여, 학교발전을 위한 동반자적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6) 교사 동아리 활동

     

      비록 타 직종에 비해 보수가 많거나 사회적인 지위가 높지는 않지만, 교직을 천직으로 삼고 소명의식으로 학생교육에 헌신하는 많은 선생님들이 즐겁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구성원들의 인화가 사회 존속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듯, 교직사회도 선생님들간의 상호 소통과 화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교사들의 동아리 활동은 나름대로 순기능을 갖고 있다고 본다. 또, 취미생활을 함께 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이에 본교에서는 동아리 활동시간 확보를 위해 정기고사기간 중 ‘동호회의 날’을 정하여 운영하기도 한다. 그동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동아리들을 보면, 배드민턴동호회, 독서회, 마라톤 동호회, 답사회 등이 있다.

     

    ▣ 독서회

     

    ▣ 답사회

     

    ▣ 마라톤 동호회 <함께 달리는 사제의 정, 런너스 동산 >

     

    ▣ 배드민턴 동호회

     

    ▣ 퇴직교사 모임 - 동산 사우회(東山師友會)

     

    (7) 각종 위원회와 학교운영위원회

     

      학교에 ‘위원회’가 매우 많다. 인사자문위원회, 성적관리위원회, 학생선도위원회, 학교폭력추방위원회, 장학위원회, 교육과정위원회, 교과서선정위원회, 포상위원회, 혁신과제추진위원회, 학교운영위원회 등이 있다. 위원회가 많다는 것은 형식에 얽매이게 되고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낭비하며 불필요한 서류를 생산한다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그러나 관련자(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 등)들이 민주적인 협의 절차를 거쳐 교육활동이나 학교경영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므로 학교교육 구성원들의 불만 해소와 참여의식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위원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이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다. 본교는 2000년 6월 29일자로 제1기 학운위를 구성한 이래 금년에 제9기 학운위가 출범했다. 공립의 경우는 심의기구이고 사립학교의 경우는 자문기구인데, 위원의 구성은 교원위원, 학부모위원, 지역위원으로 이루어진다. 다음과 같이 연간 통상적으로 처리되는 안건들의 내용을 보면, 모든 것이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민주적으로 결정되고 학교 운영이 투명하게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 학교운영위원회 월별 자문 사항

  • 2008년 개교 70주년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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