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현황
성명 박경태
직업 기아 타이거즈
졸업회수 55회
졸업연도 2006년
[경력사항] 2006.01~2014.10 기아 타이거즈
[매일경제] 선동열 감독 “박경태 인생 최고 투구였다” 2013.09.12
[경인일보] [프로야구를 이끄는 수도권 스타·5]KIA 타이거즈 투수 박경태 - 2012.11.15
제26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공동우승 - 2004.07.14
제60회 청룡기 우승 - 2005.06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감투상 - 2005
성명 한명진 (동산중-6년제)
직업 삼진해운 대표
졸업회수 1회
졸업연도 1946년
해운업,
제2대 총동창회장 : 1971-1972 재임
2006년 작고
1968년 제14차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한명진 회장은 6중 1회로, 재학 중에는 야구부 창단 멤버(2루수)로 활약했고, 해운업에 종사하며 열성적으로 동창회 활동을 하였다. 다만, 일신상의 이유로 1971년 사임하고 부회장 장길순(張吉淳) 동문(3회)이 2년간 회장직무대행을 맡아 회장직을 수행했다. 한명진 회장은 삼진해운대표이사, 선광개발 리비아지사장을 역임하는 등 사업가로도 활동했고,
야구인으로서 작고하기 전 백구회(야구인들 모임) 고문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제2대 회장에 당선된 한명진 동문은 교지 『동산』제15집(1970년 12월20일) 격려사에서 ‘동산 가족의 긍지를 갖자’고 역설했다.
이제 동산은 삼십년의 전통을 심고 청년기의 발랄한 기상과 장년기의 원숙미를 가미한 굳건한 자세가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지나간 연령이 유수와 같이 흘러간 것 같지만 그동안 동산이 겪은 형극의 길은 결코 쉽게 말해 버릴 성질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동산의 설립부터가 시련의 시작이었습니다. 1938년「인천상업전수학교」라는 명칭으로 출발한 동산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 힘든 산고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 당시 인천에 중등교육기관이라고는 仁中과 仁商(현 인천고) 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것도 일본인의 교육기관으로 한국인의 입학이 제한되었으니, 일제는 철저한 교육의 차별로 우리민족의 혼을 빼앗으려 시도했던 것입니다. 교육의 힘만이 나라를 다시 찾을 수 있고 교육의 힘만이 번영된 사회,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은 인천의 우국지사들은 이런 현상을 방관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각자 가산을 기울이고 기부금을 거두어 설립한 것이 우리의 동산입니다. 동산은 철저한 민족정신에 바탕을 둔 한국인 교육기관으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조그마한 목조건물에서 조국의 앞날을 짊어질 역군을 기르기에 고군분투(孤軍奮鬪)했던 동산의 얼은 그때부터 계속 「신의 있는 인간」을 교육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동산 가족들은 미덥고〔信〕, 의로운〔義〕행동으로 사회를 살아 나왔고 현재도 조국의 내일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신념과 앞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학창시절을 회고해 보면 우리는 극성스럽게도 공부했고 운동했습니다. 대학진학률은 타교보다 월등히 뛰어났고 「야구의 명문」이란 명성은 전국을 흔들었습니다. 이런 전통은 이어져 근년에도 장창선(張昌宣, 중 9회) 선수의 세계 레슬링 제패의 감격을 맛보았고, 태권도 4연패라는 전국기록도 가지고 있습니다. 기타 육상, 탁구 미술, 밴드, 웅변 등 각부의 활동이 얼마나 눈부셨던가는 교장실에 진열된 수많은 우승기, 우승컵이 입증합니다. 지육(智育), 덕육(德育), 체육(體育)의 내용이라면 동산 교육은 명예의 전당으로 당연지목(當然指目)되어야 할 것입니다. …중략 … 후배 여러분! 그동안 우리 동창회에서는 별로 괄목할 만한 일을 못했습니다. 금년 내가 동창회회장직을 새로 맡으면서 느끼는 것은 선배와 후배의 유대를 더욱 견고히 해서 우리 선배가 가지고 있는 동산 가족의 긍지를 여러 후배들의 가슴속에서 뿌리박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년도부터 동창회 장학금을 후배들에게 지급할 계획으로 있으며 또한 여러 면에서 선후배의 유대를 굳건하게 하고 우리를 길러준 모교의 발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후배 여러분! 동산 가족은 믿음직스럽습니다. 동산 가족은 올바른 행동에 앞장섭니다. 동산 가족은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산 가족은 중등교육, 체육계의 왕자입니다. 이러한 동산의 전통을 명심하고 여러분이 동산가족의 긍지를 갖고 열심히 노력할 때, 우리 모교 동산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민족의 횃불이 될 것입니다. 후배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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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야구부를 빛내고 학교의 위상을 드높게 하는 데 밑거름이 된 초창기 야구부원 - 1945.09
성명 이근배 (동산중-6년제)
직업 야구선수(포수)
졸업회수 1회
졸업연도 1946년
본교 야구부를 빛내고 학교의 위상을 드높게 하는 데 밑거름이 된 초창기 야구부원 - 194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