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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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현천웅

직업 프로야구 선수

졸업회수 55회

졸업연도 2006년

주요경력
학력   건국대학교동산고등학교
소속   KIA 타이거즈 포수(우투우타)
데뷔  2010년 '롯데 자이언츠' 입단
경력  2018 ~ 청원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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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제1회 야구인닷컴배 전국 레슨장 야구대회, 빗속을 뚫고 3주차 경기 성료 - 2019.11.19

 

제1회 미추홀기 준우승 - 2003.09.06

제26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공동우승 - 2004.07.14

제60회 청룡기 우승 - 2005.06 (최우수선수상, 수훈상)

 

성명 김효식

직업 동창회 홍보부장

졸업회수 22회

졸업연도 1973년

남기는 글

 

총동창회 홍보부와 IT위원회 활동

 

前 동창회 홍보부장 김효식(22회)

 

  8년을 봉사한 홍보부장 직책

  동산 총동창회 홍보부가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제8대 서한샘 총동창회장님의 관심과 지원 덕분이었다. 한샘국어의 저자이시며 문학박사이신 서한샘 회장님은 동창회를 활성화하는 데 홍보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함을 역설하시며 나에게 홍보부장 직을 강권하셨다. 아마도 내가 22회 동기회장 할 때 <22회 동기회 소식지>를 매월 동기들한테 발송하였는데, 그것을 눈여겨 보신 듯하다.

  뜻하지 않게 맡은 된 총동창회 홍보부장 역할이 다소 걱정은 되었으나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 자세로 홍보부를 맡았고, 연간 동창회 소식을 묶어 매년 1회 정기회보를 발행하였다. 또한 총동창회나 모교에 큰 행사가 있을 때는 호외를 발간하는 열정도 보였다. 홍보부장 8년 동안 8회의 정기회보와 7번의 호외를 발간하게 된다.

  호외 중에서는 "제60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우승" 특집기사로 마련한 2005년 6월 21일 제19호 <8점 뒤집기… 동산 ‘초여름 밤의 기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때의 기사는 당시 교류했던 인일여고 총동창회 홈페이지에 자세하게 나와 있기에 그 내용을 소개한다.

 

  동산고 청룡기 대역전 우승 축하합니다.

  전통의 야구 ‘명가(名家)’ 동산고(교장·김건수)가 제60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패권을 차지했다. 동산고는 9일 동대문구장에서 벌어진 대회 마지막 날 대구고와의 결승 경기에서 10-8, 대역전 드라마를 펼치며 39년만에 대회 우승기를 되찾았다.

  동산고는 이날 8점차 승부를 뒤집는 무서운 저력을 발휘하며 대회 정상을 차지했다. 대회 6번째 우승이다. 더욱이 올해로 팀 창단 60년을 맞는 동산고는 대회 역사와 같은 나이에 정상을 차지, 그 의미를 더했다. 동산고는 경기 초반 선발 류현진의 컨디션 난조로 먼저 8점을 내줬지만,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점수를 보태 승부를 뒤집었다. 특히 4회 구원 등판한 현천웅의 역투로 마운드의 안정을 되찾은 동산고는 최승준의 우월 투런포에 이어 8회 대거 5점을 쫓아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수차례 지옥과 천당을 오가며 손에 땀을 쥐게 한 경기를 펼친 동산고는 경기장을 찾은 1천여명의 동산 동문 선후배와 원로 야구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동산고 최영환 감독은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들과 성원을 아끼지 않은 학교 선후배 동문들, 그리고 인천 시민들에게 우승의 영광을 돌린다”며 우승 소감을 밝혔다.

  한편 동산고는 1955년 제10회 대회부터 제12회 대회까지 3연패로 우승기를 영구보전, 청룡기와 유독 인연이 깊었다. 그러나 동산고는 1966년 5번째 대회 우승기를 거머쥔 이후, 여태껏 대회 정상을 밟지 못했다. 국내 고교야구에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청룡기 대회에서 여섯 번 우승은 경북고 이후 동산고가 두 번째다. 이날 구원 등판해 5이닝을 피안타 1개 무실점으로 호투한 현천웅은 이번 대회 최우수선수상과 수훈상을 수상했다. 동산고 좌완 ‘에이스’ 류현진은 우수투수상을, ‘거포’ 최승준은 타격상과 타점상, 그리고 홈런상과 최다안타상까지 모두 휩쓸어 대회 4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이렇게 멋진 기사를 써 준 인일여고 IT위원장 및 관리자 전영희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그 당시 사령탑이었던 최영환(27회) 동문은 2016년 아쉽게 백혈병으로 타계하였다.

 

 

  홈페이지 개설과 IT 위원회

  또 다른 업적은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활성화시킨 것이다. 처음엔 의욕만 앞세워 총동창회 홈페이지를 열었지만 어설픈 실력으로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또한 홍보 부족으로 동문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한 채 한동안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2006년 2차로 홈피를 업그레이드하고 활성화를 꾀했으나 기술 관리자의 운영비 건으로 두 번째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에 홈피에 적극적인 동참 동문들과 오프라인에서 잦는 미팅을 통해 <IT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멤버는 김효식(22회), 강신호(23회), 김동길(26회), 이용남(28회), 김우찬(30회) 최천호(31회), 최영범(34회), 고종찬(36회), 조영진(40회)를 주축으로 하는 <IT위원회>가 발족하게 되었다.

  두 번 실패 끝에 3차 홈페이지를 개설 오픈하게 될 때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얼마나 초조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오픈 첫날부터 많은 동문들이 참여하였고. 1일 방문이 평균 70~80명이더니 탄력이 붙어 1일 방문 400여명이 넘을 정도의 활성화된 홈페이지가 탄생하게 되었다. 홈페이지에 각별한 사랑을 보였던 서한샘 회장님도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며 방문하시어 홈피 출근부에 인사글을 올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전수1회 김석배 선배님을 비롯한 50기수까지 홈피에 참여하여 60년을 넘나드는 동문들의 대화의 장이 펼쳐지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총동창회 회장단이 들어서고 신,구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홈피는 관심 부족과 소통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후 오랫동안 침체기가 있었으나 이대로 홈피를 사장시킬 수 없다는 생각과 최천호 사무국장의 노력으로 최근에 예전의 용사들이 동창회 활성화 차원으로 뭉치기로 하고 홈페이지를 페북, 밴드와 연관하여 쉽게 들어가고, 쉽게 글을 쓸 수 있게 만들려고 한다. 이제 더욱 간편하게 동문 간에 소통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홈피 활성화 대책으로는 (가칭)동산고 IT위원회를 결성하여,

  위원장: 이용남(28회), 간사: 최영범(34회), 고문: 홍종선(11회), 서명석(11회) 김효식(전 IT위원장, 22회), 현 홍보부장 최기호(34회), 홍보차장 이명희 (36회) 등 20여 명이 주축이 되어 새롭게 발전의 단추를 끼웠다. 모교와 총동창회의 홍보를 충실히 하는 게 IT위원회의 사명이며 본분임을 잊지 말고 열심히 해 나갈 것이다.

 

  ‘페이스북 동산중,고등학교 그룹’을 소개합니다.

 

  현재 회원 700여 명인 이 그룹은 김효식(22회) 동문이 2010년에 만든 그룹으로, 현재 관리자는 김효식(22회), 강신호(23회), 최승목(26회) 동문 등이다. 이 그룹의 특징은 모교 재학생인 고1 한민규부터 연세 80세이신 7회 심운섭 선배님까지 나이와 관계없이 폭넒은 연령층의 동문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목적은 매일 총동창회 소식, 모교 소식, 동문들의 다양한 소식을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데 있다.

  그래도 동산 출신답게 동문들의 관심사항은 프로에서 뛰고 있는 모교 출신 선수의 활동사항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LA다저스의 류현진(55회), 밀워키의 최지만(59회)이 가장 많은 소식을 배출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 외 SK 최승준(55회), 임준혁52회), 김택형(64회), KT 금민철(54회), 한화 송은범(52회), 넥센 김혜성(66회), 두산 이현승(51회), LG 정상호(51회) 등의 소식이 자주 올라온다.

  모교 야구소식이 주 메뉴였던 2015년~2016년에는 모교 야구 소식으로 도배하가시피 했다. 2015년에는 제3회 대한야구협회장기 우승과 동시에 4강 3회, 8강 1회 등 화려한 업적을 냈다. 2016년에도 제50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청룡기, 황금사자기 4강 진출 등 모교야구부가 더욱 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동산야구후원회의 끊임없는 사랑이 뒷받침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동산야구회원들은 월 10,000원 이상 후원해주고 있는데 그 회원 숫자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특히 서한샘 회장 시 총동창회 사무국장이었던 김선태(21회) 동문이 야구후원회 회장으로 취임하여 또 다른 기대를 하게 된다. 이 모든 소식을 페북 동산그룹은 동문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페북을 통하여 모교 출신 기존 정치인을 비롯해 정치에 첫발을 내딛는 신인들이 관심 있게 자신을 소개하곤 한다. 2018년 지방선거를 맞이해 동문들이 출사표가 이어지는데 가장 대표적인 후보가 인천시장 민주당 후보인 박남춘 후보이다. 박남춘 후보는 동산중 26회 출신으로 행시 합격 후 해양수산부 총무과장, 청와대 인사수석을 거쳐 인천 남동구에서 2선 국회의원 후 인천시장에 도전하는데 현재 인천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이다.

  연수구 구의장 출신 정지열(28회) 동문은 연수구청장 민주당 후보로 나섰지만 애석하게도 경선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에는 꼭 좋은 기회가 올 것으로 믿고 있다. 또한 모교가 위치한 동구의 구청장 후보로 36회 허인환 동문이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허인환 후보는 동산중 36회와 인천대 석사 학위자로 동구청에서 공무원 생활과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인천시 시의원 산업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다양한 경력을 거쳤다. 그는 두 자녀를 모두 동산에 보내고 동산중학교 지역운영위원을 하는 등 모교에 대한 사랑이 깊은 것으로 소문나 있다.

  그 외 경기도 분당시의원과 경기도의원을 역임했던 26회 이영희 동문도 출사표를 던졌고 부평구의회 부의장 출신 30회 이익성 동문이 4선에, 중구에서는 40회 김영훈 동문이 재선에 도전장을 던졌다. 신인으로는 남동구에 38회 이재봉 동문이 인천외식협회지부장 등의 사회사업을 거쳐 정치에 첫 입문하려 한다. 이런 모든 소식을 ‘페이스북 동산중,고 그룹’은 생생히 SNS상에서 동문들에게 소식을 전달하고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

  ‘페이스북 동산중,고 그룹’은 비공개이다. 페북 검색란에 "동산중고 그룹"을 쳐서 가입 신청하면 된다. 프로필 사진이 있고 ‘동산중,고’ 중 둘 중 하나만 졸업해도 가입할 수 있다. 꼭 동산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성명 이규정

직업 초대 야구후원회장

졸업회수 6회

졸업연도 1957년

남기는 글

제10회 청룡기 야구대회 우승 - 1955.06.05

제11회 청룡기 대회 우승 - 1956.06.06

 

 

하늘이 만들어 준 청룡기 3연패

 

초대 야구후원회장 이규정(6회)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진 전국고등학교 야구대회이며, 조선일보사가 주최하는 제10회 전국야구선수권 대회의 마지막 결승전은 공교롭게도 같은 인천의 인고(仁高)와 東山이 대결하게 되었다.

  바로 전날 동산 야구선수들은 미팅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던 끝에, 우리가 이 시합을 양보하면 청룡기를 인천시민에게 영원히 안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날 저녁 박현덕(朴賢德) 감독님께 미팅 내용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선수들의 제안을 들으신 감독님께서는 조용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아름다운 뜻은 높이 평가한다. 나는 동산에서 몸을 담고 있으면서 오늘과 같은 순간을 간절히 기다렸고, 숙적인 경남고(慶南高)를 물리쳐 선배님들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값진 승리를 얻은 동시에 과거 쓰라렸던 기억을 말끔히 털어버린 상황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다르다. 우리 팀은 지금 상승세를 탔기 때문에 모두가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내일 경기에 임한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본다. 여러분들이 애향심에서 경기를 양보하겠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 칭찬하고 싶지만, 내일 결승에서 우리가 승리한다면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바로 너희들이 청룡기 3연패를 이룩하여 야구사에 빛나는 주인공으로 길이 남을 수 있을 것이다.”

  3년 후 감독님의 말씀은 현실로 이루어져, 우리들은 품안에 청룡기를 안을 수 있었다.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 동산 야구는 한국 야구사에 불멸의 기록을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1955년 당시 인천고 야구부는 다른 팀보다도 월등한 실력을 지녔고, 그 해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던 팀이었다. 무난하게 결승에 올랐던 까닭인지, 지나친 우월감과 이미 ‘우리는 이겼다.’라는 선입견이 합쳐져 전력투구의 정신이 흐트러진 상황에서 경기를 치르지 않았나 싶다. 반면 우리 동산의 선수들은 그동안의 훈련에서 흘렸던 땀과 눈물을 기억하며 모든 힘을 결승전에서 유감없이 분출하였고, 모교의 명예를 위해 더 한층 분발하여 청룡기를 첫 번째 거머쥐게 된 것이다. 당시 박현덕 감독님과 인천고 김선웅(金善雄) 감독님과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고, 동향(同鄕)팀이 맞붙은 시합이었지만, 스포츠의 세계는 이렇게도 냉정하고 아이러니한 것이었다.

  1956년 결승전 상대인 중앙고(中央高)는 그 해 가장 승부하기 어려웠던 서울의 강팀이었다. 양교의 투수는 제구력이 매우 좋았고, 볼 하나가 승부의 갈림길이 되는 시합이었다. 모든 사람의 신경이 곤두선 상황에서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왔는데, 주심의 오른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야구는 심판 판정이 시합의 승패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경기이기도 하다.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한가운데로 던졌지만 역시 심판의 손은 요지부동이었다. 관중석에서는 모두 야유를 보내는 상황이었고, 우리 편 투수 역시 불만이 가득한 채로 글러브를 내던졌다. 심판은 우리 투수를 불러 경고를 주었고, 마침내 참고 있던 감독님께서 항의를 하는 상황이 20여 분 이상 지속되었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겨우 수습하고, 시합은 속개되었다.

  다시 투수가 던진 공은 한복판으로 몰렸고, ‘딱’하는 소리와 함께 공은 3루 선상으로 관중들의 함성과 기대 속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위기는 영웅을 만든다고 3루수였으며 1번 타자였던 이규정(李揆貞)(이 글을 쓰는 나) 선수가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 공을 건져내며, 승리의 여신을 우리 쪽으로 돌려놓았던 것이다. 청룡기를 두 번째 거머쥐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이규정 선수에게 그 대회 미기상(美技賞)을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승리의 쐐기를 박는 멋진 플레이였던 것이다.

  야구는 하나의 도(道)가 있어야 하며,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정신이기도 하다. 일정한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으로 서로 정정당당하게 승패를 가리는 스포츠인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스포츠처럼 야구처럼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던 대회이기도 하다.

  1957년은 공교롭게도 결승전의 상대팀이 인천고였다. 2년 전에 일어났던 상황이 똑같이 연출된 시합이기도 했다. 2년 전 3연패에 도전했던 인천고는 우리의 3연패를 저지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지만,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우리 야구부의 승리였다. 세 번째 청룡기를 거머쥐면서, 우리들은 청룡기 3연패의 신화를 그 해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창조하였다.

  고(故) 박현식 선배님과 함께 운동장에서 배팅과 러닝으로 땀을 흘린 순간부터 승기(勝機)를 잡았고 청룡기 3연패라는 신화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함께 뛰었던 선수 – 현재 생존해 계신 황우겸(黃佑鎌), 하명호(河明鎬), 김만근(金萬根)(이상 고 3회), 임준호(林俊浩)(고 5회), 박의양(朴義陽), 이윤영(李潤永), 고덕영(高德永), 이규정(李揆貞), 김완위(金完衛), 이길용(李吉溶)(이상 고 6회), 신인식(申仁植), 정인성(鄭仁聖), 염종운(廉鍾云), 박기련(朴基鍊)(이상 고 7회)과 3연패를 같이 한 박현덕 감독님은 東山이 청룡기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태어났으며, 하늘이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를 실행하는 멋진 연기를 마친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한결같이 연습, 연습, 연습을 통해 야구 유니폼을 입고 정말로 열심히 치고, 받고, 뛰었으며 진정한 땀을 흘렸다.

  어떠한 분야든 진정한 실력자가 되고 싶다면 목표를 세우고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오직 연습만이 으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시대는 사람들의 애환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학생야구였다.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청룡기 전국야구 시합을 중계방송이라도 하는 날엔 라디오상회에서 소리를 크게 틀어놓아 그 주변에는 많은 시민들이 모여 웃고 즐기면서 응원하는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런 시절에 1955·56·57년 청룡기 3연패는 하늘에서 만들어준 시나리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지금도 그 시절을 돌아보면 가슴이 뛴다. 동산 야구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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