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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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류기원

직업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 원장

졸업회수 7회

졸업연도 1958년

주요경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대한한방병원협회 회장

•대한한의학회 내과학회 회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부속 한방병원 병원장

•의료정책 심의위원회 위원

•대한한방종약학회 회장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 원장

•한의사국가시험 분과위원회 위원장

•경희대학교 경희의료원 30년 근속상

•보사부장관 표창

•대한민국 옥조근조훈장 포상

•'자랑스러운 동산인 상' 수상 - 의료·교육 부문(2004)

남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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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이양훈

직업 홍익대학교 재무처장

졸업회수 6회

졸업연도 1957년

주요경력

•건국대학교 상경대학 졸업,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홍익대학교 재무처장

•홍익대학교 조치원 캠퍼스 건설본부장

•일본 대판예술대학 교류 방문 대학시찰단장

•동산중․고등학교 7대 총동창회장 : 1994. 3. 18 - 1996. 3. 28 재임

•문의초등학교 총동창회장

•안산 현대프라자 설립 대표

•충북 청원선행대상 수상

•충북 청원군민대상 수상(2000)

•노현장학복지재단 설립 이사장

•'자랑스러운 동산인 상' 수상 -  사회·경제 부문(2003)

 

남기는 글

* 저서 “함께 나눔과 그 삶의 보람” “남다른 고향사랑(2017

 

  1994년 3월 18일 귀빈장에서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당시 홍익대학교 건설본부장으로 재직 중인 이양훈 동문(6회)을 회장으로 선출하였다.

  이양훈 회장은 특유의 친화력과 추진력을 갖춘 열혈 동산인으로 평소 모교와 동창회에 남다른 관심으로 헌신해 왔다. 특히 1995년 말 로얄호텔에서 개최된 ‘동산인의 밤’ 행사는 총동창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규모로 오랫동안 칭송되어 온다. 그날 최기선 인천시장을 필두로 유명 인사들이 참석하였으며 송자 연세대학교 총장의 특강이 있었다.

  2부에서는 현숙 등을 비롯한 연예인이 초청되어 흥겨운 시간을 가졌으며 선물도 푸짐했다. 동창회의 활성화를 위해 이양훈 회장은 행사비 전액을 혼자서 부담하였다. 이양훈 회장은 동창회 장학재단 설립을 강력히 주장하고, 임기 동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또한 이 회장은 고향사랑으로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되시는 분이다. 고향인 충북 청원군 문의초등학교 총동창회를 조직하여 오랫동안 회장직을 맡아 학교에 아동급식소를 개소하고 장학금을 지원하였으며 학교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룩하여 고향에서는 칭송이 자자한 분이다. 그뿐 아니라 마을 진입로 포장, 경로잔치, 농산물 공판장 설치, 갈대숲 가꾸기 운동 등의 공로로 淸原善行大賞을 수상하기도 하였고 ‘노현 이양훈 선생 공적비’가 고향에 세워졌다. 최근에는 고향에 ‘노현복지장학재단’을 설립하여 남다른 고향 사랑을 보여 주었다.

 

다음은 1994년 이양훈 회장의 취임사 내용이다.

 

 

  존경하는 역대 총동문회 회장님을 비롯한 총동문 여러분!

  오늘 능력이 부족한 본인을 총동창회 회장으로 선임하여 주신 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한편 매우 송구스러움을 느낍니다.

  오늘의 이 영광이 개인의 영광이기에 앞서 먼저 막중한 임무를 맡아 이를 원만히 잘 수행해 나갈 수 있을는지 두려움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대 회장님들의 따뜻한 보살핌과 집행부 여러분의 헌신적인 노력과 선․후배 할 것 없이 총동문들의 적극적인 성원과 협력이 있으실 것으로 믿고 본인은 그 고마운 뜻에 보답하면서 총동창회 발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겠습니다.

  본인은 총동문 여러분의 슬기로운 지혜와 따뜻한 뜻을 모아 재임기간 중에 다음과 같이 중요사업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고자 하오니 물심양면으로 아낌없는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첫째, 모교 장학재단 설립을 계속해서 추진하겠습니다. 이는 6대 회장단이 출범하면서 한정철 회장님이 동산장학재단을 설립하고자 장학재단 설립 요건인 2억 원을 목표로 모금을 하였으나, 목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현재 1억 원 정도 모금이 되었습니다만 금년부터는 장학재단설립 기금액이 2억 원에서 3억 원으로 증액이 되어 앞으로 2억 원을 더 모금하여야 재단 설립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동문 여러분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갖으시고 협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동창회 명부를 발간하겠습니다. 현대는 정보화 시대에 동문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긴밀한 유대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동문 상호간에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동문회 명부 책자 발간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이를 위해 동문회 사무실에 컴퓨터 등 사무자동화 기기를 구입하여 동문명단을 수록하고 전산 관리하여 금년 내로 보다 폭넓은 협력 체제를 구축하겠습니다.

 

  셋째, 동문회보를 쇄신하여 확대 증면토록 하겠습니다. 현재 타블로이드판 4면으로 간행되고 있는 것을 8면 내지 12면으로 증면하여 총동창회 소식은 물론 기별 활동사항도 수록하며, 또한 동문들이 주관하는 행사, 동문들의 수상, 선임, 승진 이동, 전보 및 이사 등 세세한 소식도 수록하여 보다 알차면서도 동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소식지로 편집내용을 대폭 개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계획과 복안을 기획하여도 총동문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성원이 없이는 한낱 구두선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칠 때 총동문회가 성장 발전하고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총동문 여러분의 아낌없는 협조를 바랍니다.

  끝으로 총동문 여러분의 가정에 행운이 가득하시길 빌며, 하시는 일마다 성사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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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현식 (동산중- 6년제)

직업 인천 삼미슈퍼스타즈 창단 감독

졸업회수 1회

졸업연도 1946년

주요경력

•1945년 동산 야구부 창단 멤버

•육군․농협 야구부 선수, 

•제일은행 야구부 감독

•1954~1965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연속 참가,「철인상」수상

•제5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1963) 우승

•프로야구 인천 삼미슈퍼스타즈 창단 감독

•대한야구협회 심판이사

•프로야구위원회 심판위원장

•LG 2군 감독

•'자랑스러운 동산인 상' 수상 -  교육·문화 부문(2003)

남기는 글

 ▶ 아시아의 철인 박현식(朴賢植, 1929년~2005. 8. 20)

  ‘아시아의 철인'이란 별명을 가졌던 그는 1950-70년대 한국 최고의 홈런 타자로서 ‘한국의 베이브 루스’로 불리였다.

  박현덕 감독의 동생으로 1929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나 7살 때 가족과 함께 인천으로 내려왔다. 본교 재학 중 우등상을 받을 정도로 공부도 잘하여 서울대 상대에 합격하였으나, 야구인으로 진로를 정하여 금융조합연합(1949년), 육군팀(1950년-1959년)을 거치며 타자 겸 외야수로 활약했다. 1954년 제1회 아시아 선수권 대회부터 1965년 제6회 대회까지 국가 대표로 연속 출전하였고, 특히, 필리핀에서 열린 제6회 대회에서 특별상(철인상)을 받으며 ‘아시아의 철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1968년 제일은행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치고 감독 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20여 년간 112개의 홈런을 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제일은행과 경기고 감독을 맡기도 하였다.

  그 후 대한야구협회 경기이사와 심판이사로 일한 후, 1981년 12월 15일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감독에 취임하여 아쉽게도 13경기(3승 10패)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나 1984년부터 1989년까지 KBO 심판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1년 LG 트윈스 2군 감독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난 후, 위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던 중 2005년 8월 20일 새벽 별세하였다. 한국 최초의 ‘야구인장’으로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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