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동산문화50호
P. 16
동산소식
동산 추억이 스민
벚나무을 보내며
선대규 선생님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 대상은 물론 사람이다. 가정이나 직장
에서 사람이 떠나서 생기는 표현할 수 없는 마음, 분위기의 허전함 등 여러 감정이 이 말 하나로 표현되고 공감된
다. 올해는 이 말을 사람이 아닌 교정의 벚나무에서 느끼고 있다.
종교학 연구자 그레이엄 하비는 애니미즘을 ‘세계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으되 그중 일부만 사람이고, 생명은
언제나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라고 정의했다. 하여 애니미스트들은 동물과 식물, 강과 산까지도
객체가 아닌 스스로 권리를 가진 주체로 접근한다. 나는 애니미스트는 아니지만 학교 4층에서 창밖 벚나무가
지키던 자리를 보면서 그들을 공감하게 되었다.
2017년 뉴질랜드 법원 판결이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자 마오리족이 오
랫동안 신성시했던 황가누이강에 법인격을 부여한 것이다. 황가누이강은 이제 ‘산에서부터 바다까지 개별적이
고 살아 있는 전체’로 인정된 것이다. 법원은 이 섬의 서쪽 해안에 솟아 있는 타라나키산에 대해서도 유사한 법
률적 입장을 발표했고 우레웨라 국립공원이 법
인체가 되었다. 이는 국립공원이 더 이상 국가 자
산으로서 정부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로서 소유된다(owned by itself)는 뜻이다. 인도
의 갠지스강과 야무나강이 ‘살아 있는 사람에 부
응하는 모든 권리, 의무와 책임’이라는 법적 권리
를 부여받았다. 콜롬비아 대법원은 아마존강에
법적 권리를 부여했다. 더불어 인간이 피해를 당
하면 기소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강에
위해를 끼치는 어떤 행동도 법적으로 기소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 할 지구가
훼손되어 가고 발전과 성장의 이름 아래 생명체
가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화되는 현실에서 이런
변화는 공생의 지혜이다.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