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동산문화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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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

               한때는 아이들 사이에서 딕플이라는 전자사전이 꽤 유행을 했었다. 교사인 나도 영어 전자사전이 정말 갖고 싶었
             는데 20~30만 원대 고가여서 섣불리 구입하기 어려웠다. 아이들은 라디오도 나온다고 신기해하며 야자시간에 전

             자사전으로 영어 공부한다고 거짓말하고 라디오도 듣고 그 안에 조잡한 단순한 게임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날
             영어 수업을 하는데 그 전자사전을 들여다보며 엄청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나도 수업을 하며 한
             동안 그 아이의 시선이 정말 사전에 있는지 확인 또 확인을 하다가 “OO야, 어떤 영어 단어가 그렇게 심각할까? 가
             져오세요.” 화들짝 놀라는 아이와 얼음처럼 얼어버린 우리 반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이거 뭐 있구나 싶어서 가져오

             게 하였다. 교실 앞으로 가져오는데 백만 년은 걸리는 듯했고 반 아이들의 눈빛은 많이 상기되어 있었다. 뺏고 보니
             세상에 야한 소설을 우리반 1번~끝번까지 이어서 적는다는 것이었다. 23번쯤 된 학생이니 1번부터 22번까지 스토
             리를 다 읽어야 쓰지 않겠는가. 제목을 읽어보니 ‘제주도의 푸른 밤’이었다. 그런데 그 아래 내용들은 정말 환타지에
             가까운, 인간의 몸으로는 만들 수 없는 다양한 체형을 만들어 별 요사를 다 떨어야 하는 저급한 음란소설이었다. 아

             이고~. 단체로 혼내기도 했고 반성문도 받고 빼앗긴 아이가 이름이 ‘O두’였는데 내가 “야두‘로 개명하여 고3까지 야
             두로 학교를 다녔다. 그대들 지금쯤 30대 중후반의 멋진 가장이 또는 멋진 청년이 되어 있겠군... 보고싶다. 야두야
             ~~그리고 그시절 우리 장난꾸러기들~ㅋ


               Episode 4

               내가 동산고에 처음 왔을 때가 26살, 정말 어린 나이였다.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인천 여기

             저기서 데이트를 하다보면 우연히 많은 제자들을 만나게 되기도 했고, 아이들이 주말 지나면 수업 시간에 어떻게든
             수업안하고 수다 떨어보려고 엄청 노력하던 때가 있었다. 당시 나는 어느 한 사이트에서 주관하는 이벤트에 남자 친
             구와 찍은 사진을 올렸었는데 아침에 수업하러 교실에 들어왔더니 환경 게시판이 있던 교실 뒷면에 컬러 프린터로
             우리 커플 사진을 B4용지 사이즈로 컬러로 인쇄하여 붙여놓고 그 반 학생들뿐 아니라 옆 반 아이들까지 우르르 서
             서 나의 반응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보안이 강화되지 않은 시절이어서 통합사이트에 자기

             가 아는 사람의 이름만 써도 업로드한 게시글을 쉽게 읽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한 학년이 12반까지 있었고 한
             반 구성원이 45명 이상 있던 남학교에서 뜻하지 않은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헐레벌떡 게시판에
             있던 내 커플 사진을 떼어내고 얼굴이 빨개지게 만들었던 그 시절의 그들... 나의 연애에 상당히 관심을 보여주었던

             그대들 보고싶다~~ㅋㅋ 정말!

               Episode 5


               지금은 수업 시간에 필요한 자료가 유튜브에 찾아보면 몇 초 이내에 나오는 시대이지만 20년 전에는 이런 시스템
             이 없었기 때문에 비디오를 활용하여 아이들에게 영어 팝송을 가르치려고 하면 뮤직비디오가 담겨있는 테이프를
             구해 보여주곤 했다. 강의만 듣던 아이들도 뮤직비디오를 보며 팝송을 배울 거라는 여러 날의 홍보에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드디어 팝송을 배우는 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모두 교실 앞 티비에 집중을 했다. 급하게 집에서 나오느라 당

             연히 당시 미국 유명 보이 그룹인 ‘Westlife’의 뮤직 비디오인줄 알았는데 조혜련씨의 다이어트 비디오인 ‘태보’가
             나와서 뒤집어지게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은 나의 어이없는 실수에 웃어주었고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지금
             도 그때도 나는 빼지도 못하는 살을 빼느라 참으로 애썼나보다. 나의 다이어트의 간절함을 목격한 그대들~보고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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