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의 도약(1950년대)
1948년 학교일지
년 | 월 일 | 주요 내용 |
1948 | 10. 21. | 개교 10주년 기념식 및 공로자 표창식 거행 |
<기 념 사>
1948년 7월 14일 우리 동산학교가 개교를 본 지 어언 10주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0년의 세월을 회고하자니 감개무량합니다. 물론 역사가 오래된 학교에 비하면 짧은 10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사학(私學)으로 출발함을 어렵게 하고 일제의 모진 압박 속에서 성장했기에 그 감회는 남다른 바가 있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10년 전 왜정치하(倭政治下)에서 민족의 자제들의 진학의 길을 열고자 그 얼마나 애썼습니까?
처음 인천상업강습회로 율목동에서 무덕체육관을 교실로 출발하던 당시를 회고해 본다면 지금의 우리 학교의 웅대한 건물과 운동장은 ‘지난날 앞마당 같은 곳에서’ 가슴이 확 트이는 넓은 운동장이고 보니 그야말로 전국에서 몇 개 안되는 넓은 체육시설 안에서 육상(陸上), 구기(球技)를 하는 우리는 행복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재단의 어려움 속에서도 민족교육의 열(熱)과 성(誠)을 다 쏟아 헌신하신 이사님들의 물심양면의 재단기부와 그 뒷받침이 밑거름이 되었음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재단을 세우고 도우신 님들은 조국의 광복과 세계만방에 기여보비(寄與捕禆)할 일꾼을 키우기 위해 일생을 바치신 것입니다.
1938年 7월 14일에 문교당국에 인가를 얻어 인천시 율목동 239번지 무덕관에서 개강은 하였으나 무엇보다 급한 것은 교사(校舍) 신축문제였습니다.
이에 신축교사 대지 물색에 동분서주한 끝에, 지금의 이 자리 송림동 47번지에 3,000평의 땅을 매수하여 교사건축의 제1보를 내디딘 것이니, 전기(前記)한 6개의 교실을 완성한 것입니다.
그 후로는 비교적 순조롭게 연차계획대로 확장건설에 박차를 가해 대운동장의 완성과 교실과 학년 그리고 교직원을 포용하는 대세대(大世帶)를 이룩하였으니 이 모두가 하느님의 보살핌과 학부모님들의 극진한 협조로 이루어졌음을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 바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요원한 사업이 가로놓여 있으니 더 많은 특별활동실과 대강당을 짓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본교 1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이 모두가 우리 동산을 에워싼 사회인사제현과 관계당국의 편달과 학부형님들의 열과 성으로써 자라오게 됨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학생들은 설립목적에 어긋남이 없이 학구(學究)에 전념하여 일류대학에 희망자 모두 상급학교에 입학하는 영광을 보게 되고 또 취업을 희망하는 졸업생은 모두 직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교실 환경과 화초는 본교의 분위기를 한층 온화하게 하였고 선생님들의 깊고 풍부한 학문은 곧 학생들에게 전달, 새로운 환경에 적응, 문제를 해결하는 주인공으로 키워주셨으니 교직원 및 여러분의 공을 치하하는 바입니다.
다시 한 번 동산의 무궁한 발전을 10주년을 기해 기리고 이만 줄입니다.
1948년 10월 21일 인천육영회
이사장 金允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