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 - 동산문화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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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소학언해 수업하다가 ‘몸을 셰워 도ᄅᆞᆯ ᄒᆡᇰᄒᆞ야 일홈을 후셰예 베퍼 ᄡᅥ 부모ᄅᆞᆯ 현뎌케 홈이
               효도ᄋᆡ 마ᄎᆞᆷ이니라.(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 이름을 후세에 드날리게(베풀게) 하여 부모님을 두드러지게
               함이 효도의 끝이다.)’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 착안하여 기본 아이디를 bepper로 만들었다. 정확하게 로

               마자 표기법에 맞지는 않지만 내가 가진 어떤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다.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시인 최승호의 짧은 시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제목에 부제가 붙어있고 본문
               은 2행이었다. 이때부터 나를 표현하는 언어를 바꿨고, 그 시를 제일 첫 수업 시간에 다뤘다.



               ( 2글자 )의 힘
               절망한 자는 대담해지는 법이다.   - 니체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 2어절 )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


                부제와 본문을 보면서 2어절을 채워보자고 했다. ‘짧은 다리’는 도마뱀에게 절망적인 상황이고, 그것을 극
               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야 하는가를 물었다. 아이들은 시적 상상력이 아닌 생물학적인 특
               징으로 과학적으로 답했다. 긴 다리의, 다리가 긴, 빠른 다리의, 다리가 빠른……. 자신의 한계상황에서 포

               식자들로부터 살아남으려면,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자고 했더니 ‘날개 달
               린’이라는 유사 표현이 나왔다.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제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야 한다. 타동사나 피동사
               가 아닌 자동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숨겨진 비장의 무기를 꺼내야 한다. 그래서 ‘달다’가 아닌 ‘돋다’가 되

               어야 하고, 강조를 나타내는 ‘치’가 쓰여 ‘돋치다’가 알맞다고 했다. 그래서 ‘날개 돋친’이라고 했다(아! 어렵
               다. 시를 정말 어렵게 했구나.). 자신의 한계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하며 제목에 2글자를 붙여보라고 했다.
               그 역시 스스로 깨달아야 함을 뜻하는 철학적 용어라고 힌트로 주었다. ‘인식’이라고 답한 친구가 나왔다.
               대단했다.



                수업 들어가는 3월 첫 시간에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그것을 극복할 묘안이나 대안을 찾으라는 의도의 수
               업이었지만 모두를 꿀잠의 세계로 보냈는지, 아무 말 대잔치로 끝났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이 시는 내가 나
               를 지칭하는 별칭으로 붙이기에 너무도 그럴듯했다. ‘날개 돋친 도마뱀’을 꿈꾸며. 사회관계망에 별칭으로

               떡하니 붙여 놓았다. 아직 그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다만 한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상에서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에게 비춰라.’고 하는 문구를 맞이했다. 무감
               어수 감어인(無鑑於水 鑑於人).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란 문구와 너무 닮았다. 물(또는 거
               울)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면 잘생기고, 멋있고, 뭘 해도 용서가 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자기의 얼굴

               을 비추면 자신이 미처 보지 못한 부분과 인간적 품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은근히 과업 지향적인 나는 사람
               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여 항상 경계하자는 의미로 별칭에 갖다 붙
               였다. 그래서 지금 나의 별칭은 ‘날개돋친 도마뱀의 무감어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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