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동산문화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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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나의 별칭은


                           “날개돋친 도마뱀의 무감어수”




                                                                                정봉훈
                                                                              교감선생님

                   어렸을 적 내 별명은 ‘차미봉탱이’였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렇게 불렀다. 차미는 ‘참외’를 소리하기 쉬운
                 대로 표기한 것이다. 봉탱이는 이름 첫 글자인 ‘봉’에다가 변변치 못한 것이나 어떤 것이라는 뜻을 가진 사
                 물에 붙이는 접미사인 ‘-탱이’를 합성한 것이다. 별명은 성격, 행동, 외모의 특징을 허물없이 부를 때 붙이

                 는 이름이다. 예전에는 귀한 자식일수록 천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잡귀가 들러붙지 못하여 무병장수하
                 기를 바라는 가족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전해진다. 내 어릴 적 별명에도 그런 뜻이 담겨있었을 것
                 이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 3학년 때 인천으로 유학하면서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헐벗고 굶주리지는 않았지만, 신체적 격변의 시기여서인지 외모도 사뭇 달라졌다. 친구들
                 끼리 외모나 행동의 특징을 보고 말, 개, 소 등의 동물을 별명으로 삼았다(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의 별명을 부른다). 아마도 내 얼굴을 원숭이 상이었나 보다. 친구들은 ‘멍키’ 또는 ‘원숭이’라고

                 불렀다(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비하하기보다는 친근함으로 서로서로 별명을 불렀기 때문에 당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86년 2월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1994년 5월에 모교인 동산고로 오니, 훤칠한 신장에 잘생긴 얼굴들이

                 너무 많았다. 평균 신장 정도에 평범한 외모를 가진 나는 살짝 위축되는 상황이었다. 벽돌폰이니 하는 초창
                 기 휴대전화가 점점 발달하고 가상 세계가 발전하면서 사이버 세상에는 또 다른 나를 표현하는 개성 있는
                 표현들이 차고 넘쳤다. 나도 나를 약간 미화할 필요가 생겨서 당시 유행하던 단어를 차용하였다. 미남이라
                 고 부르기엔 약간 부족하지만 까칠하지 않은 훈훈한 남자라는 뜻으로 ‘훈남’이 유행했다. 이름 끝 글자 ‘훈’

                 에다가 사내 ‘남’을 붙여 동산에서의 훈남, ‘동산 훈남’이라고 스스로 칭했다(지금 생각해도 별로다). 어쨌
                 든 이름에 맞게 행동하려고 애썼고, 담임으로서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아이들의 생각은 달랐겠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학생생활에 관한 온갖 정보를 펜으로 장부(학생생활기록부)에 적는 방식에서 인

                 터넷상에서 사이버공간에 저장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교육행정 정보시스템(neis)이 그것이다.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아이디(id)가 필요했다. 이름자, 생일, 주민등록번호, 별명, 생일 등등 온갖 것을 이용하
                 여 아이디를 만들었다. 처음엔 뽕(bbong)으로 했으나 어감이나 유사한 발음의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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