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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초대석] 인천시민상 최연소 수상자 '김형석'
  • 작성일2016.10.14
  • 조회수1017
[인천일보] "할머니 말동무 되어드렸을 뿐인데 …

[경인일보]  인천시민상 최연소 수상자 김형석 씨 - 2016.09.28

▲ 인천시민상 효행상 수상자인 김형석씨가 할머니를 안마해주고 있다.

15일 시민의 날 행사 '효행상'
유치원 때부터 부모님과 이별
빈자리 채워준 할머니께 감사

프로야구선수 꿈 포기… 내 관심사는 오직 취업
든든한 집안의 기둥으로 '진짜 효도' 하는게 꿈

인천시가 시민상을 준 지 38년 만에 역대 최연소 수상자가 탄생했다. 갓 스무살이 된 김형석씨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는 26명 후보 중 10명이 상을 받는다.

15일 문학월드컵주경기장에서 열리는 제52회 인천 시민의 날 기념 '시민 대화합 한마당 행사'에서 시민상을 받는다. 어린 나이에 '효행상'을 받는 김형석씨의 사연이 궁금해 그를 찾았다.

186㎝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의 김형석씨는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현관문을 열었다. 묵묵한 성격의 그는 인터뷰가 시작되자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효도요? 별거 안했어요.평소에 가족과 함께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 그 뿐이죠."

수상 이야기를 꺼내자 김씨는 부끄럽다며 손사레를 쳤다. 김씨는 어린 시절 여러가지 집안 사정으로 인해 부모님이 아닌 할머니 손에 길러졌다.

장난감 사달라며 조를 유치원 때에도, 반찬 투정할 초등학교 시절에도, 사춘기로 방황할 중학교 시절에도, 대입으로 막막한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의 곁을 지켜준건 할머니였다.

그는 보호자 두 명 몫을 혼자 힘으로 해낸 할머니께 감사할 따름이다. 김씨는 그동안 무릎과 어깨가 불편한 할머니의 손과 발이 돼 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온 그는 할머니의 안마사와 말동무를 자처한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부축해 병원에 함께 가 약도 대신 타오며 보호자 역할도 그의 몫이다. 집 근처 현대시장에 팔짱을 끼고 가장 볼 때는 딸내미 노릇도 톡톡히 해낸다. 또 쉬는 날엔 할머니의 팔을 붙잡고 먼저 나가자며 문을 나서 자유공원과 도원역 등을 한 바퀴씩 돌곤 한다.

식사할 때도 소화하기 쉬운 음식은 할머니를 위해 먼저 권하는 김씨다. 그는 "용돈을 드린다거나 어딜 모시고 간다거나 그런 특별한 효도를 한 건 없다. 지금까지 절 키워주신 할머니께 이 정도는 당연한 것 아니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김씨에게 집안일은 생활이다. 삼촌가족과 살아온 지도 10여년. 가족의 일원으로서 자기 몫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릴 적부터 해 왔다. 바쁜 삼촌을 대신해 조카의 공부를 봐주고 친구처럼 놀아주는 일도 당연한 생활이었다. 크고 작은 집안일도 당연하다는 듯이 김씨가 먼저 나서 책임지고 있다.

또 가족에게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그나마 쉴 수 있는 주말에도 시급이 센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에 보탬이 되고 있다.

그에게도 어두운 구석이 있다. 집안 사정으로 어머니의 손길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엄마 손잡고 지나가는 친구들 보면 솔직히 부러웠다. 엄마 손길이 필요하던 때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했다.

부모를 원망하고 어긋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단 한번도 할머니의 속을 썩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도 사춘기를 피하지 못했던 개구쟁이였지만, 할머니가 삶의 중심을 잡아주곤 했다.

큰 사고나 어린 시절의 방황은 그를 피해갔다. 인터뷰 내내 옆에서 지켜보던 할머니 백영자(76)옹은 "손주가 너무 예쁘고 기특하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인생의 8할을 차지했던 '야구'

그의 꿈은 프로야구 선수였다. 조심스럽게, 소중하게 품어온 미래였다. 친구 부모님은 김씨가 10살 되던 해에 야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셨다. 글러브를 잡은 소년 김형석에게 야구는 평생의 꿈이었다. 야구부가 있는 창영초등학교, 동산중학교, 동산고등학교를 다닌 탓도 그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면 글러브와 야구공, 방망이를 집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운동장에서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