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자료
“서울야구장의 2만 관중과 라디오 중계를 듣는 수많은 인천의 야구팬을 환호와 실망이 뒤범벅이 되도록 흥분과 낙담으로 몰아치던 조선일보사 주최 제21회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명문 인천동산고교는 패자전에서 재기한 대구상고와의 열전 끝에 5 : 2의 전세를 8회 말에서 적실 등으로 일거에 4점을 얻어 뒤엎고 14회 대회 우승 이래 실로 7년 만에 청룡기를 차지해 내 고장 경기로 금의개선했다. 이 영광의 그늘에는 동산고 박현덕 감독의 저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올해 출전한 선수들이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 전인 21년 전에 박현덕 감독은 교원으로 근로하던 동산고에 야구부를 손수 창설, 감독의 자리에 앉아 야구만이 천직인 양 한눈 한번 안 팔고 온갖 쓰라림을 혼자 씹으며 ‘동산야구’를 키워 오늘에 이르렀다 인천을 가리켜 전통의 야구도시라고 한다. 그러나 전통이란 계승자가 착실해야 빛을 낼 수 있는 법 - 헤일 수 없는 부침의 고비를 넘으며 허다한 세론에 현혹됨이 없이 오늘까지 걸어온 박현덕의 공이야말로 전통의 계승자라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이번 대회를 치르는 동안, 더구나 대구상고와는 승자결승에 대치 - 동점으로 재시합을 가져 신승을 하고 패자전에서 재기한 대구상고와 다시 만나 연장전에 패퇴, 마침내 4차전으로 최종 자웅을 가름하는 기이(?)한 싸움을 벌였다. 패자전에서 올라 온 대구상고와의 1차 결승에서 야구통이라면 거의가 동산 7 …대구상 3으로 낙승을 예측했지만 결과는 정반대 - 동산은 빈번히 기회를 놓치고 궁지에 몰리어 청룡기는 전연 가망이 없을 것으로 웬만한 팬은 중계방송을 듣는 도중 라디오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도대체 박현덕의 작전이 글렀다는 것이다. 왜 정공법을 무시하여 완전 득점 찬스를 놓치냐는 것. 해설자도 그렇게 말했지만 - 사실 결과로 보아선 그러한 실례가 여러 번 있었다. 허나 여기에 대해 박현덕은 한마디 한다.
그의 특유의 아집(?)을 내세우며 ‘그건 모르는 소리 … 우리 애들의 타율이 평균 2할 5분대요. 스퀴즈나 보내기 번트보다 적의 허를 찌르는 ‘히팅’책이 오히려 확률이 더 있는 걸 … 정공법에 대해선 상대들이 너무 연습을 많이 쌓은 점도 있고……’
이렇게 그는 우승의 기쁨을 가누지 못하면서 ‘박현덕 류’의 경지를 간다.
불원 그의 나이 50. 박현덕 하면 ‘야구동산’을 연상할 만큼 우리나라 야구계에서의 그의 지보는 확고하다. 그의 계씨 박현식을 동산중학교 때부터 길렀고 불세출이라고까지 일컬은 신인식 투수(이 대회서 연 3년 제패)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도 그요, 지금 국내 실업팀에서 동산 출신이라고 이름 붙은 선수는 누구 하나 그의 손때 묻지 않은 제자라고는 없다.
그의 애칭은 ‘코끼리’다. 육중한 몸집으로 보아 그럴 법도 하다. 그는 누구보다 야구 이론에 밝았다. 규정 해석에도 절대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시합 도중에 ‘어필’을 한다. 그러면 미처 분석도 않고 ‘떼거리’라고 한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여기에 그의 서글픔은 이만저만 아니다. 그러나 코끼리와도 같이 점잖게 참고 야구에 이겨야만 했다. 실력을 길러야 했다. 화려한 중앙을 그는 넘나보지 않았다. 오직 동산이면 족했다. 동산 이상도 없고 동산 이하도 없는 것이 그의 전부인 듯……
- 어떻소, 박 감독 오래간만에 금년 들어 우승도 두 번이나 했고 이제 썰물 때가 되지 않았소?
- 글쎄…….
하면서 아직도 현역감독에의 미련이 귀여운 연인의 체취처럼 감도는 인상을 가느다란 눈매에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