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자료

< 우리학교 짱> 인천동산고등학교
  • 작성일201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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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심의 미래농사= 인성+창의교육

인천시 동구 송림동에 위치한 동산고등학교(교장 김건수)는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개교해 74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니며 명문 사학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학교다. 당시 인천의 유지였던 김윤복·유군성·이흥선·김세완·김종섭 선생 등과 인천지역 주민들의 성금이 학교 설립의 초석이 됐고, 설립자 최승우 씨가 연백평야 30여만 평(99만1천여㎡)을 비롯한 전 재산을 희사해 재단 설립을 한 민족사학이다.
 

‘여기 멀리 일본 통치 때부터 이 학교를 세우고 도우신 임들은 민족혼을 찾는 것만이 겨레를 사랑하는 길인 줄 아셨노라. 우리도 이 얼을 거울삼아 겨레의 횃불이 되련다’라는 교정의 개교기념비가 민족사학으로서 건학이념을 말해 주며, 학생들의 가슴속에 민족혼을 고취하고 선각자들의 숭고한 정신과 교훈인 ‘신의’가 몸에 배도록 교육되고 있다.
인천시 동구의 하나뿐인 남자 일반계고교로서 원도심의 발전을 위해 지역사회의 기대를 받고 있는 동산고를 찾았다.
비록 지역적으로 불리한 여건이지만 학생들의 교육력 향상과 맞춤형 진학지도 성과 등으로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고, 학부모 학교참여사업이 활발해 학교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 특히 근래에는 동구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동구청소년수련관, 동구청소년상담지원센터, 백병원, 송림동 경로당, 노인요양시설 희망의 집 등과 MOU를 맺고 학생들이 체험활동과 봉사활동을 하며 인성교육과 더불어 지역사회에 대한 학교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 인천 야구의 산실, 동산고 야구부
1942년 일제 치하에서 근로봉사라는 미명 아래 동산고 학생들도 부평 소재 조병창에 동원됐고 그 사례금으로 48원을 받게 됐다(당시 교사 월급 100원). 해방이 되고 서양 문물에 대한 호기심을 지니고 있던 학생들이 바로 이 48원에 대한 지출 문제를 논의하던 중 ‘야구’로 뜻이 일치해 1945년 9월 ‘야구부 발기회’를 통해 박현식·하명호·한명진 등이 중심이 돼 부원을 모집하고 스스로 훈련을 시작했다. 당시 연희전문학교에서 야구부 활동을 하던 박현덕 선생이 야구감독 겸 부기교사로 부임해 정열을 쏟아 야구부를 지도한 것이 현재 동산야구의 모태가 됐다.

그 후 1955년부터 1957년까지 청룡기 3연패를 비롯해 황금사자기·봉황기 등 전국대회에서 20여 회 우승하며 야구 명문 동산을 전국에 알리게 됐다.